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고 마사야스 (문단 편집) === 미요시의 멸망 === 헤츠기가와에서의 실책을 이유로 [[센고쿠 히데히사]]는 영지가 몰수당하고 유배지로 쳐박혔으며 그 다음으로 사누키군의 총대장을 맡은 비토(尾藤) 가문[* 히데요시의 시코쿠 원정 당시 비토 토모노부(尾藤知宣)가 아와에서 군공을 올려 사누키의 영지를 하사받았다.] 또한 [[규슈]] 원정 중에 추태를 이유로 영지를 몰수당하고 유배지로 쳐박혔다(...). 이 다음으로 사누키의 영지를 하사받은 가신이 이코마 치카마사. 마사야스는 죽었으나 아직 소고 가문의 적통은 남아있었다. 바로 그의 아들 [[소고 센마츠마루]]. 그러나 나이가 매우 어렸기에 히데요시에게 당장의 가독 상속 허가를 받지 못하였고 [[이코마 치카마사]]의 보호로 자라나고 있었으나 돌연 독살당하여 성인식도 올리지 못한 채 사망하였다. 마지막 적통이 사망한 고로, [[미요시 유키나가]]의 대두 이후 키나이와 시코쿠 동부에 위세를 떨치던 아와 미요시 가문과 사누키 소고 가문은 멸망을 맞이하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